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주 공방전/평가 (문단 편집) ==== 반론 ==== 다만 형주의 상실이 촉에게 큰 손실이었단 말은 반만 맞았다. 형주의 인구와 자원은 분명 상실했다. 하지만 손권의 형주 정복 과정에서 유비군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힌 전투는 없었다. 유비군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힌 것은 관우가 서황한테 질 때 벌어진 일이다. 손권이 형주를 장악하며 관우가 죽긴 했으나 반조조세력인 유비와 손권을 합쳐서 보았을 때, 손실은 유비와 손권 양 세력의 관계악화, 그리고 관우, 관평 등의 사망 이 정도다. 형주는 손권이 큰 손실없이 그대로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유비군에게 진짜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힌 것은 유비의 분노로 인해 벌어진 [[이릉대전|이릉 전투]]이다. 이 이릉 전투마저도 손권군은 큰 손실 없이 막는데 성공했다. 그 외에 꼽자면 관우, 법정, 장비, 황충이라는 군부의 핵심들이 4년만에 줄줄이 죽어나간 것인데 관우의 죽음을 제외하면 형주와 무관하다. 결국 제갈량이 북벌하며 고생한 직접적인 이유는 이릉 전투와 장군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8만의 군대를 동원했지만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수많은 장교들과 [[마량]] 같은 인재를 잃었다. 이릉 전투의 원인이 손권의 배신 때문이라고는 하나, 유비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안 일어날 수도 있는 전투였다. 이릉 전투가 후대에 미친 악영향이 하나 더 존재한다. 조비가 양양을 불태우고 완으로 전선을 후퇴하자 손권은 위나라가 버린 양양을 점거한다. 하지만 유비가 침공해오자 폐허가 된 양양까지 지키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포기하고 만다. 유비가 이릉 전투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오히려 형주 공방전 이전보다 반조위세력의 영토는 넓어졌으며 장강을 완전히 점거할 수 있었단 것이다. 물론 조위가 후에 탈환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삼국시대 내내, 조위와 손오는 수비 측은 영토 보전에 성공했으며 공격 측은 점령에 실패했다. 이 점을 생각하지 않고 '''손오의 육군은 약하다'''라는 근거 없는 프레임에 갇혀 금방 잃었을 것이라 하는 것은 적절한 추측이 아니다. 이런 식의 논리면 오히려 손오의 육군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는 촉한이 양번을 점령했어도 다시 잃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